Memento Inanis.

2010년 1월 31일, S.E.E.S.는 타르타로스 정상에서 에레보스 아바타와 조우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갈구하며 끝없이 싸웠다.
하지만 이런 각오만으로 신에 한 없이 가까운 존재를 꺾어내릴 수는 없었다.

에레보스 아바타는 그 자신의 힘만으로 그들을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이제 곧 내려올 달을 향해 손을 뻗고 뿌리를 내렸다.

허나 이계의 신에게 그런 행동 따위 무의미했다.
에레보스 아바타는 그 자아를 박탈당하고, 그 자신이 오히려 신의 지성으로 일변했다.
인연에서 비롯된 기적의 힘을 얻은 아리사토 미나토는, 달에 도달했다.
그리고 신의 지성으로 전락하여 그저 기계적으로 멸망을, 소원을 구현하는 시노미야 메이를 마주했다.

그는 단 하나의 기적을 빌었다.
이계의 신은 돌아가야 할 곳으로. 신의 지성이었던 자는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그 자신은 만인의 죄악을 대신 짊어질 곳으로.

기적이 이루어지기 직전, 기적의 여파로 자아를 되찾은 시노미야 메이는 에레보스와 뉵스의 권능으로 마지막 변덕을 부렸다.
언어의 형태도, 행동의 형태도 갖추지 못 했지만 선명히 색채를 드러낸 그의 감정을 이해했다.
그 애정에 경의를 표하고, 보답으로서 아리사토 미나토의 죄악을 가져갔다.

변덕과 함께 지은 미소를 끝으로 시노미야 메이는 온전히 허무가 되며, 영겁에 가까운 세월 동안 뉵스를 막아내며 싸우는 운명을 결정지었다.
무한에 가까운 권능을 행사한 대가였다.
아리사토 미나토만이 흐릿하게나마 그를 기억에 담으며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2010년 3월 5일.
아리사토 미나토 또한 별다른 이상 없이 옥상에서 동료들을 맞이했다.
1년 동안 쌓아온 인연을 이야기하고, 이제 온전히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던 때.
돌연, 월광관 고등학교를 덩굴이 감싸안았다.
일반인은 인식하지 못 하는 덩굴이 학교를 옭아매고, 섀도우의 환영이 복도를 버젓이 돌아다니는 현상.
이 현상의 해결을 위해 그들은 급히 학교의 탐사에 나섰다.
그들이 학교의 구석에서 발견한 건 불가사의하다 못 해, 터무니 없는 미궁이었다.
―있을리 없는, 검은 수정의 미궁.
‌‌임시로나마 탐사대를 꾸려 그 미궁의 탐사에 나선 S.E.E.S.
그들은 1년 간의 경험을 살려 빠르게 미궁을 돌파해나갔다.
그렇게 미궁의 최심부에서 마주한 건 수많은 섀도우의 파편이 들러붙은 채,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하나의 개념. 거대한 문 앞에서 그들을 마주하는 현상.
‌아리사토 미나토는 '이것' 을 마주한 순간, 원치 않았던 진실을 알아차린다.
‌이곳은 달의 모습이 비추어진 환영이자 새로운 타르타로스의 씨앗이라고.
‌눈 앞에 마주한 것은―다시 뉵스에게 침식당해, 그 자신의 기억을 매개체로 환상으로나마 강림한 것.
S.E.E.S의 전원은 다시 에레보스 아바타와 조우했다.
불완전한 강림으로 인한 것인지, '그것' 의 희미한 의지 때문인 것인지, 치열한 전투 끝에 그는 격파되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아리사토 미나토 뿐만이 아닌 멤버 전원이 그의 기억을 끄집어내게 되었다.

시노미야 메이의 환영이 부스러지기 직전, 그는 S.E.E.S.로부터 등을 돌렸다.
아니, 문을 향해 마주섰다. 또 다시 싸우기 위해.

그는 찰나였음에도 하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들을 수 있었다.
조금 더 힘낼게요. 조금 더 힘낼테니…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아리사토 미나토는 이 소동을 지나, 시노미야 메이가 온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라는 확신을 찾았다.
그렇기에 그는 동료들의 존중, 걱정과 함께 망설임 없이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의 육신이 바스라져도, 후손조차 남지 않아도, 영겁을 지낼 것만 같던 기계가 멈추어도.

그리고 마지막 인류가 죽음을 맞이하고, 시노미야 메이가 그 운명에서 벗어난 순간. 아리사토 미나토의 영혼이 바스라지기 직전.
두 사람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 하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함께 심연으로 침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