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는 생환한 것이 아니다.
뉵스 아바타가 제시한 죽음을 받아들인 뒤, 시노미야 메이라는 생명은 명백히 죽었다.
지금 그를 움직이게 하는 건 이미 죽어간 수많은 이들의 공포, 그리고 두려움이다.
죽고 싶어하는 의지와―죽어간 사람들의 원념.
영혼이 온전히 사라지기 직전에 그 원념을 이루어주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공포에 짓눌려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의무가 그제서야 고개를 든 꼴이었다.
하지만 의무만으로 그 지옥에서 기어나왔다고 볼 수는 없다.
죽음을 겪으며 모든 절망을 내려놓는 안식을 맛 본 것이다.
죽어간 이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살아가는 이들의 안식을 위한 선의.
단지 그 이유만으로 시노미야 메이는 죽음을 찢고 지옥에서 돌아왔다.

이제 그를 인간이라 부를 수는 없다. 단순한 생명이라고도 볼 수 없다.
그는 수많은 죽음을 실천하고 구현하는 악의의 대표자로 다시 비롯되어,
타르타로스 정상에서 달을 집어삼키기 위해 그 가지를 뻗는다.

모치즈키 료지―뉵스 아바타가 아리사토 미나토에게 선택을 요구한 날, 2009년 12월 31일.
본래라면 아리사토 미나토의 선택, 죽음을 맞을 방법에 대한 선택을 듣고 모치즈키 료지는 파멸하거나 인간으로 남은 잔재를 잃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아리사토 미나토가 선택을 말하기 직전, 모치즈키 료지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종말' 이라는 가능성을 지니던 순간.
‌시노미야 메이는 그 껍질을 찢고―모치즈키 료지를 구성하는 존재, 근원, 개념을 침식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그에게 삼켜진 일개 생명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시노미야 메이의 행동 목적에 찬동한 인류가 힘을 보탰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뉵스 아바타로서의 권능과 힘을 모두 가져간 그는 뉵스 아바타의 후계 개체이자 별개의 선고자로서, 그 어떠한 선택의 여지도 없는 멸망을 알린다.
‌망각으로 얻는 축복 없이, 손에서 놓을 절망이 더 많을수록 그 안식에 가치가 있다며.
‌2010년 1월 31일, 떨어지는 달마저도 집어삼켜 신마저도 죽이고 말겠다며.
그리고 이야기는 갈래를 나눈다.
S.E.E.S.는 멸망을 뛰어넘지 못 했다.
떨어지는 달을 마주하지도 못 하고 스러진다.

하지만 세계는 이어진다.
이제는 달 속에 갇힌 정원으로,
신에 한없이 가까운 존재의 손바닥 안에서.
S.E.E.S.는 멸망을 맞이하고 만다.
달의 지성으로 전락한 자아 앞에서.

그리고 세계는 막을 내린다.
죽음의 땅에서 달은 여전히 무너지고 있다.
인도자의 흔적이, 언어조차 없이 소원을 찾아 헤맨다.
S.E.E.S.는 멸망을 뛰어넘었다.
아리사토 미나토는, 달마저도 감싸안는 기적을 품었다.

이제 삶은 이어진다.
기적에 따르는 대가를 한 생명이 가져간다.
인도자의 흔적이, 단 한 사람에게 삶을 인도한다.